[월간인터뷰] 정재헌 기자 = 꽃 한 송이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유한한 아름다움과 생명력, 질감과 조형성, 그리고 신비롭고 매혹적인 빛깔은 벌과 나비는 물론 사람까지 유혹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 같은 개개인이 지닌 존재의 의미와 소중한 빛깔을 색으로 환히 비추는 서양화가 차경 작가는, 펠트와 실크의 만남처럼 따뜻하고 하늘하늘한 느낌의 그림을 주로 그린다. 한국적이면서 단순화된, 여인과 꽃잎이라는 두 가지 미니멀한 테마를 에버그린과 같은 편안한 배경에서 전개하는 차 작가는 교육자와 화가라는 두 가지 삶의 테마에서 이제 화가를 택하고 많은 이들을 위한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작가의 모든 그림에 붙은 ‘행복한 휴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달려온 이들을 위한 차 작가의 작은 성의이자, 소중한 개인의 존재마다 붙여 준 축복의 이름이다.
수평선을 보면 마음속 평화를 얻는 나이, 꽃과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탐색하기 좋을 때
불혹을 한참 넘어선 65세, 서양화가 차경 작가는 평생의 업이었던 교편을 내려놓고 운동과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는 근황을 알려 왔다. 한 송이 혹은 다발의 꽃이 지닌 매력을 탐미하기로 유명한 차 작가는 지금까지 군중 속 개인의 소중함을 은유하는 꽃에 대해 많이 표현해 왔는데, 어느새인가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푸른 하늘과 탁 트인 풍경, 정적인 수평선을 볼 때 설렘과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면서 차 작가는 작품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고 한다.
꽃 접사 그림은 작가가 좋아하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 테마와 닮았지만, 사실적이고 강렬한 묘사보다는 비구상적 형태의 판타지적 색채를 더한 꽃잎과 나뭇잎으로 우아하고 서정적인 곡선을 그려 낸다. 이 곡선은 여인이라는 오브제의 좋은 장식이자, 직접적인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여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에 식재료나 물건을 그릴 생각이 없다”라며 소녀, 귀부인, 동료 예술가들을 그렸던 마리 로랑생처럼, 차 작가 역시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라는 여성들을 주로 그린다.
볼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는 차 작가의 그림들은 성물을 다룬 그림이나 엽서 일러스트들처럼 편안한 구도, 평화로운 정경으로 소유욕이나 장래에 대한 근심 같은 현대인의 복잡하게 주름진 마음까지 반듯하게 펴 준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산의 능선을 바라볼 때마다 여체와 일체를 이룬다는 느낌과 심리적 행복을 만끽한다는 차 작가는, 보는 이들이 그림 속 여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꽃을 바라보고 편안한 공간과 일체화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차 작가가 실제로 느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과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며 느끼는 휴식이 바로 차 작가의 그림마다 느껴지는 ‘행복한 휴식’의 정체인 셈이다.
모든 사람의 개성과 꿈의 결실을 각각의 꽃, 열매로 표현해 작품의 순수성 깊어지다
차 작가는 명화의 조건에 대해, ‘보면 볼수록 좋은 그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철학적인 개연성에서 나타나는 속성도 차 작가 그림의 주된 소재다. 여자, 그리고 식물의 형상을 띤 꿈들은 인류가 지닌 각자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땅에는 포도송이와 나뭇잎이 그려져 누구나 이루고자 하던 작은 행복이 결실을 이루었음을 함축하고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그려온 연작 ‘행복한 휴식’들은 그릴 때는 물론 훗날 다시 볼 때마다 작가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고 한다.
또한, 교육자로 살아가며 서양화가인 남편과 동행하는 삶도 행복했지만, 차 작가는 그런 행복한 울타리 안에서 기성 화단의 화우들을 많이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퇴직하고 여유가 생긴 지금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교우관계를 갖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조교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만질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음식점도 키오스크로 돌아가는 IT 시대이기에 2달 전부터 컴퓨터를 배워 전에는 직접 보던 풍경을 고화질 사진으로 찾게 되었다.
사진작가들의 재해석을 거친 꽃과 풍경들은, 차 작가에게 더 많은 모티브를 주고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초록빛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차 작가는 운동을 끝내고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화실의 물감과 캔버스를 모두 소진하고자 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라고 생각하는 차 작가는 열심히 살아온 삶의 보상으로 그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금전적으로 의뢰받지 않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할수록 작가의 의도와 마음이 더 순수하게 담기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 개인전을 개최하고, 영천시가 운영하는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1년 입주작가 공모에 당선되어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지난해에는 대구광역시 범어아트스트리트 입주작가로서 작업을 했던 차 작가는 그런 자신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래서 현역 중견 작가들의 창작을 독려하고자 시에서 공간을 지원하면, 차 작가는 주저 없이 지원서를 낼 계획이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림’이라는 숙제를 내어 주는 기분이라는 차 작가는 달라진 환경과 체험에 따라 성숙해진 감성으로, 기존의 작품 표현을 더욱 심도 있게 다듬겠다는 각오가 있기에 다가오는 2019년이 설렌다고 전했다.